눈망울이 슬퍼 보이는 산양.
달이 걸린 영봉에 산양이 산다
월악산 국사봉과 만수계곡
가파르고 험준하기로 이름난 월악산에는 천연기념물 산양이 산다. 이곳에 사는 산양의 유전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개체수를 늘리기 위한 연구와 업무를 수행하는 국립공원연구원 종복원센터
산양복원팀도 이곳에 있다. 그곳에 들러 산양의 특성과 종 복원 계획을 알아보고,
탐방객들이 월악산의 생태를 한껏 느낄 수 있도록 꾸민 만수계곡자연관찰로를 찾았다.
가파르고 험한 월악산
늦가을 충주호의 자욱한 안개가 걷히면 웅장한 바위산이 단풍으로 치장하고 그 수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험준하기로 이름난 월악산이다. 198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충북 충주시,
제천시, 단양군, 경북 문경시의 4개 시․군에 걸쳐 있다.
충북 충주에서 36번 국도를 따라 제천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충주호를 가로지르는 월악교를
만난다. 월악교를 건너면 여기서부터 충북 제천이다. 오른쪽에는 월악산 송계계곡 입구를
알리는 커다란 바위가 있고, 이 길로 접어들면 월악산의 주봉인 국사봉(1097m)이 신령스런
모습을 드러낸다. 마을 사람들은 범접하기 힘든 이 봉우리를 영봉(靈峰)이라고 부른다.
월악(月嶽)이란 산 이름이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는 말에서 유래되었을 만큼 우뚝 솟고
가파른 영봉은 높이 150m, 둘레 4km에 이르는 거대한 암반이다. 옆에는 그에 못지않은
암반 봉우리, 하봉과 중봉이 영봉에 예를 올리듯 고개를 낮추고 있다.
산양의 주 서식처인 월악산의 봉우리, 왼쪽부터 하봉, 중봉, 영봉
산양이 사는 영봉
전문 암벽 등반가가 아니면 오를 엄두도 못 낸다는 월악산 영봉에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야생동물 산양이 살고 있다. 원래 월악산에는 1982년까지 야생 산양이 관찰되다
자취를 감췄단다. 우리나라에 사는 산양은 상위 포식자가 없기 때문에 개발로 인한 서식지
고립과 밀렵이 산양을 사라지게 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산양들은 어떤 과정으로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을까?
이곳에 살고 있는 산양들의 고향은 설악산이다. 1978년 설악산 눈사태 때 구조된 산양 1쌍이
용인 에버랜드로 옮겨졌고, 이후 증식된 6쌍의 산양이 3회(94, 97, 98년)에 걸쳐 1쌍씩
월악산에 방사된 것이다. 2년 전 산양의 똥을 수거해 유전자분석을 한 결과 한 부모의 형질을
가진 13종류의 유전자가 확인되어 부모를 포함해서 약 15마리의 산양이 사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발톱 밑바닥이 말랑말랑하고 두 발톱이 따로 움직여 암반지대를 다니기에 좋다.
풀과 나뭇잎을 먹는다. 상위 포식자가 없는 산양의 천적은 인간뿐이다.
암반지대 벼랑을 좋아하는 산양
설악산이 고향인 산양들을 다시 그곳으로 돌려보내지 않고 왜 월악산에 방사했을까? 그것은
암반으로 된 월악산의 지형이 산양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었고 자취를 감춘 산양이 다시
정착하길 바라서였다.
산양이 좋아하는 생활환경은 절벽이 많으면서도 조금만 나서면 관목과 초지가 있는 곳이다.
지형적으로는 30도 정도의 능선 및 급경사지가 많은 5~7부 능선이다. 산양은 이런 곳에서
절벽사이로 난 좁은 이동로를 따라 이동하며 생활하는데, 주로 이른 아침과 저녁에 먹이를
뜯고 낮에는 절벽의 안전한 장소에서 되새김질을 하며 지낸다.
어찌 보면 척박한 환경일 수도 있는 절벽 근처에서 산양이 살 수 있는 데는 발톱의 역할이 크다.
발톱 밑바닥이 말랑말랑해서 잘 미끄러지지 않고, 두 개의 발톱은 위 아래로 따로 움직일 수
있어 암벽을 타기에 좋다.
성격이 온순한 산양은 사람과 부딪치거나 폐를 끼치는 일이 없어서 간혹 농가에 피해를 주는
다른 야생동물과 달리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는다. 여름에는 초본류와 나뭇잎, 가을에는
열매, 겨울에는 떨어진 신갈나무 잎이나 조릿대를 즐겨 먹는 산양은 숲의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월악산에서 오랫동안 산양을 관찰해 온 석권희(36) 연구원의 말에 의하면 월악산 산양은
늦가을에 헛개나무 열매를 많이 먹는데, 자연 상태에서의 헛개나무 열매는 씨앗이 너무
딱딱해 발아율이 5%에도 못 미치고, 발아기간도 3년이나 걸리지만 산양이 먹고 배설한
똥에 있는 헛개나무 씨앗은 딱딱한 씨앗이 부드러워져 1년 만에 90% 이상 발아된다고 한다.
건강에 좋다는 헛개나무가 상품성은 있지만 발아율이 낮아 고민인 농가에는 무척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고, 풀과 나무의 번식 성공률을 높이니 숲에 기여하는 면도 크다.
-산양 똥. 무더기로 쌓여 있으며 온갖 씨앗이 섞여 있다.
-산양 발자국. 발톱자국 두 개가 선명하다.
산양 목에 부착하는 라디오 텔레메트리와 GPS 칼라.
위부터 라디오 텔레멘터리 목발신기, 수신기, GPS 칼라 수신기
산양의 복원과 관리
사람들도 좋아하고 증식에도 성공했지만 월악산의 산양들이 갖고 있는 태생적인 문제가 있다.
모두 한 부모로부터 파생된 근친교배의 문제다. 결국 유전적 다양성의 문제를 해결하고
더욱 많은 산양이 월악산에 살게 하기 위한 종 복원 사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결국 환경부는 올해부터 10년에 걸친 산양 복원 사업을 계획했고, 국립공원연구원
종복원센터가 그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송계계곡 입구에 있는 국립공원연구원 종복원센터 산양복원팀은 현재 월악산에 살고 있는
산양을 관리하고 외부에서 산양을 도입해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다른 국립공원에도 산양이 살고 있지만 월악산에 산양복원팀을 만든 것은, 암반지대여서
산양이 살기에 적당하고, 과거에도 산양이 살았으며, 6개체가 약 15개체로 증식되었다는
사실 등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산양이 한 배에 한 마리의 새끼를 품고 임신기간도
6개월이나 되어 번식 속도가 늦은 것을 감안하면 월악산은 산양이 살기에 매우 좋은 환경임을
알 수 있다.
산양복원팀을 방문했을 때 연구원들은 무인센서 카메라를 설치하고,
라디오 텔레멘터리(radio telementary)와 GPS 칼라(GPS collar)를 기존의 산양 목에
장착하기 위한 포획 계획을 짜고 있었다. 라디오 텔레멘터리는 직선거리에서는 반경 5km,
산림지역에서는 반경 1km 안에서 발신하는 주파수를 수신할 수 있고, GPS 칼라는 산양의
이동 경로를 낱낱이 기록할 수 있다. 산양 목에 장착한 GPS 칼라를 2년 되 회수해 그 동안의
이동 경로를 분석하면 산양이 선호하는 지역과 이동 특성, 먹이를 먹는 곳과 쉬는 곳,
겨울을 나는 곳, 계절에 따른 서식 고도 등 산양의 행동에 대한 많은 자료를 확보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산양을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한 실질적인 계획을 수립하려는 것이다.
이곳 산양복원팀의 팀장인 이용욱(32) 연구원은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복원 사업을 담당한데
대한 자부심도 느끼지만, 앞으로 10년 간 산양의 행동을 관찰하며 산양의 생태를 정확히
파악하게 될 일에 기대가 크다고 말한다. 오래 전인 1968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을
만큼 산양의 보호가치가 절실했으면서도 연구자가 많지 않고 산양의 생태가 많이 밝혀지지
않은 현실을 볼 때 산양의 생태를 좀더 깊이 알게 될 이번 계획의 의미는 크다.
만수계곡자연관찰로 입구. 곳곳에 주제가 있는 화단이 조성되어있다.
-두 번째 발가락이 길어 계곡산개구리와 구별되는 북방산개구리.
-까만 발톱이 있어서 도롱뇽과 구별되는 꼬리치레도롱뇽 유생.
-막은 계곡에서 무리지어 옮겨 다니는 버들치.
-초저녁에 먹이활동을 하고 정해진 장소에서 쉬는 관박쥐. 새벽에 한차례 더 사냥하고 어두운 집으로 들어가 숨는다.
만수계곡자연관찰로
산양이 살고 있는 곳이 정상부의 절벽 근처이다 보니 탐방객들이 산양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월악산 자연환경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상징적적인 의미로 산양이 있다면,
만수계곡자연관찰로는 월악산을 한껏 체감할 수 있는 곳이다. 월악산국립공원은
만수계곡자연관찰로와 문헌상 확인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갯길인 하늘재의
역사자연관찰로를 조성해 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만수계곡 입구에서 시작되는 자연관찰로의 총 길이는 2Km에 이른다. 탐방코스를
따라 살고 있는 생물을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200여 종 20여만 본의
야생화가 철따라 피어나고, 수량이 풍부한 계곡에는 버들치, 꼬리치레도롱뇽, 북
방산개구리 등 맑고 차가운 계곡에 사는 수서 생물이 많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진행되는 자연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자연환경안내원들의
해설을 들으며 1시간 30분 정도의 코스를 탐방할 수 있다.
늦가을 방문한 만수계곡자연관찰로에서는 한껏 자태를 뽐내다 시들어버린 풀꽃들을
보았지만 봄, 여름, 가을에 얼마나 화려했을지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종수도 많았고 조성 규모도
크다. 낙엽이 떨어진 계곡물에는 버들치들이 무리지어 옮겨 다녔고, 돌 몇 개만 들춰도
꼬리치레도롱뇽과 북방산개구리도 볼 수 있었다. 관찰로 주변의 나무들도 다양했으며
간간히 들려오는 새소리, 동물의 배설물도 반가웠지만 누구의 소리인지, 누구의 똥인지
알아볼 만큼 소양이 충분하지 못했던 것이 아쉬웠다.
날이 저물자 관박쥐들이 사냥을 하느라 분주하다. 한참을 소란스럽게 날아다니던 관박쥐들이
쉬는 장소로 옮겨가니 송계계곡에는 바람소리만 남는다. 산양도, 생물도,
송계 계곡의 사람들도, 모두 잠든 밤, 영봉에는 둥근 달이 걸렸다.
글 사진 조영권
자료사진 제공 : 국립공원연구원 종복원센터 산양복원팀
참고문헌
양병국, 「한국산 산양의 분류, 생태 및 개체군 현황」, 충북대 대학원, 2002
최태영, 「설악산국립공원의 산양특별보호구역 설정」, 서울대 환경대학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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